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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넓은 삽질
밥값 본문
대학을 졸업하고 개발자 학원을 전전하며 취업을 준비한 게 벌써 2년째다. 그간 한 백 번의 지원과 수 번의 면접과 단 한 번의 취업이 있었다. 지금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예순을 넘기신 아버지가 못과 망치로 벌어온 돈을 받아 먹으며 밥값을 할 준비 중이다.
오늘 아침에는 개발자 학원에서 하는 개발 프로젝트 중간 점검 마감이 있었다. 총 2주 간 진행되는 프로젝트에서 지난 일주일 간의 결과물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일주일을 꼬박 밤을 새 개발해도 부족한 부분이 넘쳐나 오늘 아침까지 꼬박 밤을 샜다. 중간 결과물을 제출하고 침대에 쓰러져 낮잠을 잤다. 저녁 쯤 일어나 끼니를 때우려고 후라이팬에 불을 올리던 차에 아버지 전화가 왔다.
프로젝트 진행이 한창일 때 아버지의 전화가 있었다. 일감이 생겨 지금 서울에 올라오셨다는 전화였다. 아버지는 일이 금요일에 끝날 것 같으니 내가 사는 자취 방 구경도 갈겸 식사도 한 끼 하자고 하셨다. 나는 토요일 아침까지 프로젝트 중간 점검을 마무리해야 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를 기깔나게 끝내더라도 취업을 할 자신이 없다면 아버지와 식사 한 번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러자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아버지의 일이 늦게 끝나면서 금요일의 약속은 취소되었고 나는 내심 안도하며 밤 새 프로젝트를 끝냈었다.
“글로 갈라면 8호선 타면 되제?”
아버지는 아직 일이 끝나지 않았지만 서울에 온 김에 얼굴이나 한 번 보자고 말씀하셨다. 나는 부랴부랴 근처 식당을 알아보고 옷을 챙겨 입었다.
멀리서 온 아버지에게 식사를 얻어먹으려니 민망해졌다. 내가 밥값을 낸다고 한들 그 돈은 아버지의 것이기도 하니 잠자코 밥을 먹었다. 아버지는 같이 일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 분과 서울의 모텔방에서 묵으며 작업을 하시고 있고, 그 분의 아들도 서울의 개발자라고 하셨다. 아버진 나도 개발자라고 하셨다고, 오늘은 아들을 보러 가니 밤에 기다리지 말라고 하시고 오셨다고 한다. 그러면서 은근한 어투로 내 자취방에서 누울 자리가 있냐고 물으신다. 내 자취방은 가벽으로 만들어진 3평짜리 주방과 벽돌로 만들어진 4평짜리 방 안에 침대와 책상, 그리고 화장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옥탑방이었다. 여태 거쳐간 나의 친구들 중 누구에게도 하룻밤을 내어주지 못했던 작은 공간이었다. 밥을 다 먹고 내 자취방으로 향했다.
자취방 문을 열고 널어 놓은 빨래들을 한쪽으로 치우며 겸연쩍게 서 있었다. 방 안은 침대와 책상, 나와 아버지가 서 있을 공간으로 꽉 차버렸다. 옥상으로 가는 문을 열면서 옥상에 담배 꽁초를 모아둔 쓰레기통을 치우지 않은 걸 후회했다. 아버지는 잠시 고민을 하시더니 멋쩍게 웃으시며 말하셨다.
“근처에 찜질방 없나?”
다행히 근처엔 코로나의 공백을 버틴 24시 찜질방이 있었다. 아버지의 동료에게 아들 보고 오니 기다리지 말라 큰 소리 쳤으니 지금 갈 수도 없는 노릇, 그렇다고 아버지 혼자 찜질방에 보내드리기도 민망해서 나도 같이 따라 갔다. 서울의 찜질방에는 사람이 없었다. 카운터에도 직원이 없고 키오스크만 덩그러니 있었다. 키오스크에 대인 둘의 값을 치르니 락카 열쇠가 슝 하고 나온다.
찜질방 바닥에 누워 잠을 청했지만 쉽게 오질 않았다. 몸은 피곤했지만 머리만 아프고 잠에 들기가 힘들었다. 아버지도 나와 같은지 이리저리 뒤척이셨다.
새벽 4시쯤 잔 듯 만 듯한 기분으로 눈을 떠보니 아버지가 옆에 앉아서 휴대폰을 보시고 계셨다. 다시 자보려고 돌아 누웠을 때 아버지가 내 등을 톡 건드리며 작은 목소리를 내셨다.
“씻고 밥 먹고 가까?”
머리를 대충 말리고 근처 24시간 하는 식당이 없나 찾아보려고 휴대폰을 켰다. 근처 식당은 모두 점심 쯤이나 문을 열었다. 하는 수 없이 근처 편의점이나 들러 식사를 때우기로 한다. 밖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편의점 우산을 샀으면 했지만 아버지는 집에 우산이 한 트럭은 된다며 한사코 거절하고 걸어가신다.
멀어지는 아버지를 가만히 서서 바라 본다.
작아지는 아버지가 문득 뒤돌아 보신다. 내가 우두커니 서 있는 걸 보시곤 손을 크게 한 번 흔들어주신다.
나도 손을 크게 한 번 흔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