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넓은 삽질

체끼, 헝새, 콜라, 전기자전거, 류승범 본문

체끼, 헝새, 콜라, 전기자전거, 류승범

ggsno 2025. 2. 2. 17:36

체끼로 속이 메스꺼워 차는 커녕 지하철도 탈 수 없었다. 집까지 걸어가려면 2시간은 족히 걸렸고 자전거를 탈 기력도 없었다. 택시를 타면 토할 것 같았다. 그 때 생각난 건 헝새였다. 헝새는 얼마전 검은색 전기자전거를 샀다고 자랑했다. 나에겐 마치 오토바이라도 탄 것 마냥 멋있어 보였다. 마침 여긴 헝새의 집 근처여서 헝새에게 전화했다. 헝새는 군말없이 나와줬다. 나중에 알고보니 헝새는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있었고 해야할 일과 긴장이 밀려들어와 정신 없는 상태에서 나의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오랜만에 만난 헝새는 어제 만난 것처럼 실없는 소리로 맞이해줬다.

 

형, 콜라를 한 번 먹어봐.

 

플라시보는 정말로 효과가 있다. 하지만 헝새의 콜라는 나에게 충분한 믿음을 주지 않았기에 한 모금을 마시고 모두 헝새에게 줬다. 헝새의 허리를 잡고 전기자전거를 탔다. 1월의 바람에 손이 떨어져나가는 것 같았다. 집에 도착하면 헝새한테 돈이라도 얼마 보내야지 생각했다. 택시비라도 하라고. 근데 그럼 전기자전거는 어떻게 들고가지.

 

이게 벌써 1년 전 일이라니. 1년 후인 지금도 나는 여전히 체끼가 있고 헝새와도 가끔 만난다. 어제도 헝새를 만났다. 헝새는 헝새를 처음 만났을 때의 내 모습처럼 머리가 길어졌다. 단발까지 기른단다. 내가 추구했던 류승범 간지를 헝새가 구현해낸다면 내가 입고 싶었던 옷을 선물해야겠다.

Comments